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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학의 역사의 흐름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은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공중보건의 역사와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 고대기(?~A.D. 395), ⓑ 중세기(395~1500), ⓒ 여명기(1500~1850), ⓓ 확립기(1850~1900), ⓔ 발전기(20세기 이후)의 5개 시기로 나누어 주요한 사건과 내용을 살펴보시면 됩니다.

 

(1) 고대기(?~A.D. 395)

아마도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공중보건의 역사는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소망이 마음속에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문헌과 역사적 자료에서 살펴보면 세계 4대 문명이 출발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도시가 계획적으로 건설되었고, 이러한 도시에 목욕탕, 배수관, 화장실, 의료시설 등 공중보건과 관련된 시설들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고대 문명의 인류도 높은 수준의 건강 의식이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구체적인 문헌으로 제시되는 것은 기원전 1500년경에 모세에 의해 기록된 구약성경의 레위기입니다.

레위기는 원래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다양한 규율과 제사 의식에 대해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역사서입니다.

이 레위기 전체 내용 중 일부 내용(11~26절)이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공중보건 규칙과 실천 내용으로, 신체 청결을 포함한 개인과 사회의 책임 문제, 피부병 환자의 관리와 격리, 병후 가택 소독, 오물처리, 음료수와 식품 보호 및 모성 위생 등 광범위한 보건, 위생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대 인도에는 기원전 600년경 병원이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아소카왕 시대의 인도 병원은 청결과 위생환경을 강조하는 현대 병원의 모습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시기 인도인들은 제왕절개술로 산모와 유아의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대 공중보건학을 다루면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인물 중 하나는 그리스의 의성 히포크라테스일 것입니다.

그가 쓴 히포크라테스 전집에서는 해부학, 임상, 부인과 소아의 질병, 질병의 예후, 식이요법과 약물요법, 수술, 의학윤리 등의 주제를 다루며, 위생과 보건에 관한 많은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그중 "공기, 물과 토지에 관하여"에서는 사람과 환경과의 부조화가 질병을 발생시킨다고 하여 주위 환경을 강조하는 장기설과 인체는 점액, 흑담즙, 혈액을 가지고 있다는 4 액체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후 장기설은 로마 시대의 갈레누스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와 같이 갈레누스도 점액, 흑담즙, 혈액의 4가지 체액이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프네우마가 신진대사를 조절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기체의 통일설에 대한 히포크라테스의 개념을 이어받은 갈레노스의 생리학은 그 뒤 1400년 동안 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2) 중세기(암흑기 : 395~1500)

일반적으로 유럽 역사에서 서로마제국의 몰락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1000년간의 시기를 중세기라고 합니다.

중세기의 명칭은 주로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은 고전적인 학문과 문화를 부활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1000년에 걸친 암흑과 무지의 시대가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와 자신들을 갈라놓았다고 생각하였는데, 이 생각은 인문주의자들의 업적과 이상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세는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발전의 시기였으며 인문주의자들이 활약한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변혁으로 이어지는 토대를 마련한 시기였습니다.

 

기독교 사상은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의 물질주의적 사상에 따른 극도의 사치 주의에 대한 반발과 종교적인 경건 사상 따라 금욕 사상이 행동의 규범으로 자리 잡게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기독교 사상에 따라 환자 치유의 책임을 종교계가 담당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지역별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는 자선 병원이 다수 설립되었습니다.

주로 임종을 앞둔 환자나 무주택자들이 병원에 수용되었는데, 질병에 따른 분리 수용이 아니라 한 침대를 셋 또는 네 명이 함께 이용하는 형태라 위생개념은 무시된 면도 있었습니다. 수술은 절단 이외에는 시행되지 않았고, 그 이유는 하느님이 주신 신체에 손상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신학적 관점이 우월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술 시 불가피하게 필요한 헌혈이 1163년 교황의 칙령에 의하여 금지됨에 따라 제한적 시술과 진료만이 주된 진료 방법이었습니다.

 

6세기나 7세기에 이슬람교가 북아프리카와 일부 유럽, 아시아 등에 널리 퍼졌는데, 이는 이슬람 세력의 확대와 더불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슬람교는 마호메트의 출생지인 메카로 평생에 한 번은 순례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이때 각처에서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 콜레라가 만연되어 이 순례자들이 귀향하는 경유지와 그들의 고국에 콜레라를 파급시키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결과 감염병이 범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중세 초기에 이집트에서 소아시아로 전파된 것으로 보이는 한센병이 십자군과 다른 민족의 대이동으로 유럽 각지에 전파되었습니다. 이 병은 천벌로 인식되어 민법상 사망으로 간주하였으며, 환자와 접촉하는 행위 및 환자의 이동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센병 환자들은 구별되는 옷을 입고 종을 울리면서 다니도록 하였으며, 그 결과 한센병이 점차 감소하였습니다.

 

페스트는 인류가 경험한 가장 심각한 감염병이었습니다. 1331년부터 15년 동안 페스트는 중국과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2,500만 명이 사망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후에도 페스트는 주기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휩쓸었는데, 특히 유럽은 16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피해를 경험하였었습니다.

감염병으로 인한 참담한 경험을 거치면서 거기에 대처하려는 노력도 나타났습니다. 베니스에서는 1348년에 오염되었거나 의심이 가는 배와 여행자의 입항을 금지했고, 외국에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은 항구 밖의 일정한 장소에서 질병이 없어질 때까지 일정 기간 머문 후 입항이 허락되었습니다. 이것은 검역(quarantine)의 용어가 의미하는 40일보다 긴 2개월간이었지만 역사적으로 검역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3) 여명기(요람기 : 1500~1850) 공중보건의 기초 확립 시기

르네상스 문화가 만발한 이 시기는 중세기 이전의 고전 학문과 그 가치에 대한 관심의 확대가 이루어진 시대이며, 고대 문명이 맥을 다시 잇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대륙 발견과 탐험, 지동설의 주장, 봉건제 몰락, 상업 계급의 성장, 종이, 인쇄술, 항해술, 화약과 같은 혁신적인 신기술의 발명 및 응용이 이루어진 시기였습니다.

 

공중보건 분야에서도 이 시기는 의학 기술과 질병 치료의 개념이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 때입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주기적인 대륙 간 감염병이 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한센병, 발진티푸스, 괴혈병, 천연두, 페스트가 광범위하게 유행하였습니다. 영국 시드넘 지역은 질병의 경과를 상세히 관찰하여 유행병 발생의 자연사를 알 수 있는 기록이 현재에도 존재합니다.

이 시기에 레벤후크는 현미경을 발명하여 미생물을 관찰하기도 하였습니다.

 

독일의 프랑크(Johann Peter Frank, 1745~1821)는 <의료정책체계>라는 9군의 저서를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은 1779년에 처음 발간되었고, 국민의 건강은 국가의 책임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공중보건과 개인위생을 체계화하였습니다.

 

영국의 그랜트(John Graunt 1620~1674)는 그의 친구인 페티와 함께 사망통계자료를 이용하여 <사망률 기록문서에 관한 자연적, 정치적 관찰, 1662>에 대한 내용을 발간하였습니다. 그는 통계적인 규칙성을 찾기 위해 런던과 몇몇 농촌의 출생 시 남녀의 성비, 사망률과 출생률을 조사하였고, 이를 통하여 최초로 사망률 통계표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는 출생률과 사망률을 분석하면서 군 복무 연령층의 남성 수, 가임여성의 수, 총세대수만이 아니라 런던의 인구까지도 대략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스웨덴은 1749년에 세계 최초로 인구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조사인 국세조사를 실시하였고, 근대적인 의미를 지닌 국세조사는 1790년 미국에서 실시되었습니다.

 

영국 의사 제너(Edward B. Jenner, 1749~1823)는 1798년에 우두 접종 법을 발견하여, 18세기 유럽 사회에 만연하였던 천연두를 근절하는 데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큰 존경을 받았지만, 자신의 발견을 이용해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고, 업무와 사생활이 심각하게 지장을 받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종두법을 전파하는 데 바쳤다고 합니다.

 

영국의 채드윅(Edwin Chadwick, 1800~1890)은 1842년 <노동자 계층의 위생상태>라는 보고서를 통해 위생 개혁의 시급성, 지역 공중보건 활동의 중요성, 보건 행정조직체계 마련 등에 대해 내용을 제시하였고, 이 내용 중 일부는 현재 공중보건과 보건 행정의 중요한 원칙이 되고 있습니다. 이후 이 보고서의 영향을 받아 1848년 세계에서 최초로 [공중보건법]이 제정되기도 하였습니다.

 

(4) 확립기(세균학 시대 : 1850~1900)

다른 시기에 비해 이 시기에는 공중보건학에서 제도적·내용적인 면이 구체적으로 정립된 시기입니다.

공중보건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 면에서도 짧지만, 구체적인 필요성과 활동이 구체화하면서, 비로소 공중보건학이 시민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로 공중보건학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시기는 질병의 발생에 대한 예방의학적 개념이 확립된 시기로서, 세균학의 발달과 면역학의 발전으로 감염병의 근원적인 차단이나 치료 및 질병의 예방 활동이 가능해졌고 공중보건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된 시기입니다.

 

영국 의사인 스노우(John Snow, 1813~1858)는 마취술과 위생적인 치료 부분에 대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역학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는데, 1854년에 런던 브로드 가에서 발생하였던 콜레라 전파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보고서로 작성하여 질병의 발생과 전파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정확하게 제시하였습니다. 특히, 지도를 통하여 콜레라가 발병한 시기부터 전파가 급격히 이루어진 시기까지 환자에 대한 분포상황을 파악하여 보고서에 제시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노력은 당시 역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또한, 이 보고서가 발간되기 이전까지 광범위하게 인식되었던 장기설에 의한 질병 발생을 의심케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일 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는 당시 유럽 사회에서 최초로 국가 차원의 사회보장에 관한 포괄적인 계획을 고안하고 마련하여 실시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883년 세계 최초로 [질병보험 법]을 제정하였으며, 1884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1889년에는 [연금보험 법]을 제정하여 실시하였습니다.

 

환경 위생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독일의 페텐코퍼(Max Joseph Von Pettenkofer, 1818~1901)는 1866년에 세계 최초로 위생학 강좌를 독일 뮌헨대학에 개설하여 영양, 의복 환기, 난방, 상·하수 등 위생학 전 분야를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실험 위생학을 확립하였습니다. 또한 독일은 1868년에 공중위생학 잡지를 발간하였으며, 1873년에 공중위생협회가 창설되기도 하였습니다.

독일 의학자 코흐(Robert Koch, 1843~1910)가 1876년 세균을 분리 배양하는 데 성공한 이래 1877년 탄저균을, 1882년 결핵균, 1883년 콜레라균을 발견하였고, 1905년 결핵균 발견의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 노벨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프랑스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910)는 미생물이 발효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였으며, 광견병·탄저병·닭 콜레라 등에 대한 백신을 처음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한편, 미국 공중보건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의사 스미스는 1872년에 최초로 공중보건협회를 창설하였는데 이 협회는 오늘날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5) 발전기(탈 미생물학 시대 : 20세기 이후)

공중보건학에 대한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진 이 시기는 보건의료 관련 기술이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공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전된 시기입니다. 이에 따라 도시환경 문제, 빈부격차 문제, 노사문제, 저소득층의 생활환경 문제 등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함께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국제화·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21세기의 변화에 따라 공중보건학 문제는 단지 한 국가에 국한된 국내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 문제로 확대되어 국제 공동협력의 장을 통해 상호 간 밀접한 공조를 이루어나가야 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국가적인 공중보건 관련 법령과 제도를 체계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보건사업을 적극적으로 시작하여 [학교급식법, 1906], [학교보건법, 1907] 등의 법령체계를 마련하였으며 1919년에 세계 최초로 보건부를 만들어 조직적인 체계도 구성하였습니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보장제도를 최초로 채택하여 운영하였고, 1948년에 국가 의료보장제도인 국민보건 서비스 제도를 실시하여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환경위생과 검역 중심을 하는 단계에서 모자보건, 학교보건, 보건 부부 사업 등의 영역이 포함된 공중보건사업을 실시하며 지속해서 활동 영역을 확대 발전시켜 왔습니다. 미국은 1935년 세계 최초 [사회 보장법]을 제정하였고 1965년 [사회보장법]의 개정으로 획기적인 노인의료보험과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부조 제도가 마련되어 현재까지도 실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공중보건과 관련된 조직적 연구 및 치료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1948년에 국립보건원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1962년에는 질병관리본부(CDC)를 설치하여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질병에 대해 지속적인 관리와 연구 활동을 지원하며 주도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공중보건 활동은 국제 간 협력사업입니다. 단지 공중보건의 문제를 단일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함께 해결하고 도와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1948년 4월 7일 세계 보건기구(WHO)의 헌장이 26개국의 비준에 의해서 정식 채택되어 UN의 전문기관으로서 WHO가 설립되었습니다. 

 

세계 보건기구의 사업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78년 당시 소련에 속해 있었던 카자흐스탄 알마아타에서 선언된 '2000년까지 모든 인류에게 건강을'이라는 주제를 달성하기 위해 추진된 일차보건의료 사업입니다.

국제적인 산업이 고도화되고 도시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높은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심각한 환경문제와 다양한 도시화에 따른 부작용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환경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공동 사를 해결하기 위해 최초로 국제연합(UN) 환경 회의를 1972년 스톡홀름에서 개최하였으며, '인간 환경회의'를 통해, 국제연합 체제 내에 지구환경문제를 전담하는 전문기구인 'UN 환경계획'이 설치되었습니다. UN 환경계획은 현재까지 지구 환경 논의를 주도하는 UN 기구로서 '오존층 보호를 위한 몬트리올 의정서', '기후변화 협약', '생물다양성 협약' 등의 국제환경협약 제정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후 주요 국제적인 환경 활동으로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 및 개발에 관한 국제연합 회의에는 세계 185개국 대표단과 114개국 정상 및 정부 수반들이 참여하여 지구 환경보전 문제를 논의하였는데, 이 회의 결과에서는 '리우선언'과 '의제 21'을 채택하여, '지구온난화 방지협약', '생물다양성 보존 협약' 등에 대한 지구 환경보호 활동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는 성과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환경문제를 10년마다 점검하기로 하였는데, 이후 200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지속가능 발전 세계정상회의'가 열려 1992년 선언된 리우 환경선언의 10년간 추진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마련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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